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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arodnatribuna.info
입사한 지 딱 3주 됐을 때 사수가 엑셀 파일 하나를 열어서 보여줬다. 800줄짜리 테스트 케이스 시트였는데, 각 줄마다 "확인 조건", "입력값", "예상 결과", "실제 결과", "확인자 이름", "확인 일자"가 다 적혀 있었다. 다만 더 충격이었던 것은, 이것이 "이번 스프린트 분"이라는 말이었다. 다음 스프린트에 또 800줄을 새로 쓴다는 소리다.
나는 한국에서 스타트업 2년, SI 1년을 해봤는데 이 정도로 테스트에 집착하는 회사는 처음 봤다. 다만 도쿄에서 옆자리 일본인 동료는 엑셀 셀 하나하나를 채우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일본 IT 테스트 문화가 왜 이런지 구조적으로 뜯어봤다. 일본 취업을 고민 중이라면 이것을 모르고 가면 정말 고생한다.
일본 IT에서 테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가
프로젝트 기간의 40~60%가 테스트 작업이다
한국에서 웹 서비스를 만들면 테스트 비중이 보통 15~25% 정도다. 많이 잡아도 30%다. 다만 일본 SIer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테스트 공수가 전체의 40~60% 잡혀 있다. 요건 정의 10%, 설계 20%, 개발 20~30%, 테스트 40~50%, 이런 식이다.
이것은 그냥 넉넉히 잡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만큼 쓴다. 단위 테스트, 결합 테스트, 시스템 테스트, 운용 테스트, 사용자 수락 테스트까지 모두 각각 별도 페이즈로 돌린다. 각 페이즈마다 테스트 사양서 작성 → 테스트 케이스 작성 → 실시 → 결과 보고서 → 리뷰 미팅 → 수정 → 재테스트. 이것을 5단계 곱하기로 한다.
테스트 케이스는 엑셀로 관리된다 (2026년 기준으로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TestRail이나 Zephyr, 혹은 GitHub Issue로 관리하던 것이 익숙한 사람은 조금 놀란다. 일본 SIer는 거의 무조건 엑셀이다. 심지어 스크린샷을 셀 안에 붙여서 "이런 화면이 나와야 한다"라고 증빙을 남긴다. 엑셀 시트 하나가 50MB씩 나가는 경우도 있다.
왜일까? 원청 대기업이 엑셀 양식을 정해서 내려주고, 하청은 거기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툴을 도입하려면 원청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1~2년 걸린다. 그냥 엑셀을 쓰는 것이 빠른 것이다.
QA/테스터 인력 비율이 한국보다 2~3배 많다
한국 IT 회사는 개발자 10명에 QA 1~2명 정도가 평균이다. 스타트업은 QA 없이 개발자가 다 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일본 SIer 프로젝트는 개발자 10명에 전담 테스터가 4~6명 붙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테스트 감독관"이라는 별도 직군도 있다. 테스터가 테스트한 것을 또 검증하는 사람이다.
왜 이렇게 테스트에 집착하는가: 3가지 구조적 이유

현상만 보면 "이들은 이상하다"로 끝난다. 다만 정말 중요한 것은 왜이다. 구조를 뜯어보면 사실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유 1: 다중 하청(多重下請) 구조와 책임 회피 문화
일본 SI 프로젝트는 보통 이렇게 굴러간다. 고객사(은행, 보험사, 관공서) → NTT데이터/후지쯔/NEC 같은 원청 → 1차 하청(수백 명 규모 SIer) → 2차 하청 → 3차 하청 → 개인 파견직. 4~5단계 다중 하청이 일상이다.
이 구조에서 버그 하나가 터지면 어떻게 되는가. 원청이 "너희 1차 하청은 무엇을 했냐"라고 물어본다. 1차 하청은 "2차 하청의 검수가 부실했다"라고 한다. 2차는 3차에게 떠넘긴다. 이때 살아남는 유일한 무기가 "나는 테스트 케이스대로 다 했다"라는 문서이다.
엑셀 800줄에 하나하나 체크 표시를 하고 스크린샷을 붙이는 것이 이 맥락이다. "여기 쓰여 있지 않은 케이스는 내 책임이 아니다, 내가 한 것은 다 여기 있다"라는 증거물을 남기는 작업이다. 버그가 터지면 경위서(顛末書) 수십 장을 쓰고 사과 회의를 하는 문화라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유 2: SIer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공수(工数) 기반
한국 SI도 공수 기반이지만 일본은 더 심하다. 인월(人月) 단가로 견적을 짜고, 프로젝트 기간도 인월로 산정한다. 즉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업계이다.
이 구조에서 테스트 공수를 늘리면? 매출이 오른다. 품질도 좋아 보이고, 원청에게 "저희는 꼼꼼하다"라는 어필도 된다. 테스트를 줄이면? 매출이 줄고, 버그가 터지면 책임을 진다. 누가 테스트를 줄이자고 하겠는가.
게다가 고정가격(一括請負) 계약이 섞이면서 책임은 하청이 지는 구조라, 원청은 "테스트를 많이 하라"라고 압박하고 하청은 그것을 맞추면서 돈도 받는 윈윈이다. 비효율적으로 보여도 참여자 전부에게는 합리적 선택이다.
이유 3: 품질 관리 문화의 제조업 유산
이것이 진짜 근본이다. 일본 제조업은 토요타 QC, 칸반, 포카요케(ポカヨケ, 바보방지), 무결점 운동 같은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이것을 IT 산업에 그대로 이식한 것이다.
제조업은 물리 제품이라 한 번 출하되면 수정이 어렵다. 그래서 사전 검증이 극단적으로 중요하다. 다만 소프트웨어는 배포 후에도 금방 패치가 가능하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일본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정신을 IT에 붙이니 엑셀 체크리스트로 무한 반복 검증하는 문화가 나온다.
IPA(정보처리추진기구)가 발간한 IT 인재 백서를 보면 이 부분이 명시적으로 문제 제기된다. "제조업형 품질관리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라고. 다만 거기도 말만 그렇지 실제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일본 IT 테스트 문화가 유독 집요한 것도 이 제조업 DNA 때문이다.
SIer vs 웹 서비스사: 같은 일본 IT라도 완전 다른 세계

일본 IT 취업을 고민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이 구분이다. 뭉뚱그려서 "일본 개발자는 어떻다"라고 말하는 글은 걸러야 한다. SIer와 웹계(Web系)는 정말 다른 세계이다.
NTT데이터, 후지쯔, NEC 같은 SIer 대기업
위에서 설명한 테스트 지옥, 폭포수(워터폴), 엑셀 문서 지옥, 다중 하청이 다 여기에 해당한다. 연봉은 대졸 초임 400~450만엔, 5년 차 600~700만엔 정도다. 워라밸은 프로젝트 나름인데 납기 전에는 야근이 폭발한다.
기술 스택은 Java(특히 낡은 Spring Framework), Oracle, VBA, COBOL 등 옛날 것이 많다. 최신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여기로 오면 안 된다. Git을 쓰지 않고 SVN, 심지어 파일 서버로 버전을 관리하는 곳도 아직 있다.
한국어/영어가 되는 외국인 개발자가 가기는 의외로 쉽다. JLPT N2만 있어도 서류가 통과된다. 다만 들어가서 고생한다.
메르카리, 사이버에이전트, 라쿠텐, DeNA 같은 웹계
여기는 완전히 다르다. 애자일, 스크럼, CI/CD, 테스트 자동화, 코드 리뷰, GitHub, 영어 가능이다. 메르카리는 공식적으로 사내 공용어가 영어라 일본어를 하나도 못 해도 일할 수 있다(그래도 생활에는 일본어가 필요하다).
연봉도 훨씬 높다. 메르카리 초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700~900만엔에서 시작하고, 시니어는 1200~1500만엔도 가능하다. 미국 빅테크만큼은 아니어도 한국보다는 훨씬 낫다.
다만 진입장벽이 정말 높다. 코딩 테스트, 시스템 디자인 인터뷰, 영어 면접을 다 본다. 한국 네카라쿠배에 가는 난이도와 비슷하거나 더 어렵다. 일본 SIer에 가는 것과는 난이도의 차원이 다르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솔직한 기준
- 3년 차 미만 주니어인데 한국에서 풀리지 않음 → SIer도 괜찮다. 일단 해외 경력을 만들고 3년 후 웹계로 점프
- 5년 차 이상 시니어, 기술 스택이 조금 있음 → 바로 웹계에 도전. SIer에 가면 스킬이 다 녹아내린다
- 관리자 트랙을 원함 → SIer가 오히려 낫다. 웹계는 관리자 자리가 적다
- 워라밸 우선, 성장 정체는 괜찮음 → 중견 SIer가 최고. 6시 칼퇴가 가능한 곳이 많다
도쿄 SIer 주니어가 겪는 일본 IT 테스트 현장 하루 일과
말로만 하면 감이 오지 않으니 내 일과를 공개한다. 2차 하청 중견 SIer 소속, 1차 하청 대기업 프로젝트에 파견 중인 상황을 기준으로 한다. 일본 IT 테스트 문화가 실제 개발자의 삶에 어떻게 박혀 있는지 시간 단위로 보여준다.
오전 9시~12시: 전날 테스트 결과 리뷰 회의
9시 출근 → 9시 15분 조례(朝礼, 돌아가면서 어제 한 일을 한 줄씩 공유) → 9시 30분 테스트 리뷰 미팅. 어제 돌린 테스트 케이스의 결과를 원청 담당자에게 보고한다. 실패한 케이스가 1개라도 있으면 원인 분석서를 요청받는다. 이 미팅만 1~2시간이다.
오후 1시~6시: 엑셀 테스트 케이스 작성 + 실시
점심 후 본격적으로 테스트 케이스를 쓴다. 기능 하나당 평균 30~50개의 케이스다. 각 케이스마다 "전제 조건", "조작 절차", "예상 결과", "판정" 칸을 다 채운다. 스크린샷 4~5장을 첨부한다. 하루에 새 케이스 20~30개를 쓰고 기존 케이스 50~80개를 실시한다.
실제로 코딩하는 시간은 하루에 1~2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전부 문서와 테스트다.
퇴근 전: 일보(日報) 작성, 진척 보고
6시 전에 일보(日報)를 쓰고 상사에게 메일로 보낸다. "오늘 한 일, 진척률 몇 %, 내일 할 일, 이슈 사항" 포맷이다. 이것이 또 20~30분 걸린다. 주간보고(週報), 월간보고(月報)는 별도로 있다.
퇴근은 6시~7시다. 납기 전에는 10시, 11시 야근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한국 SI보다 빨리 간다. 다만 집에 가면 뇌가 녹아 있다. 엑셀만 8시간 본 사람의 눈동자를 본 적이 있는가.
한국 개발자가 일본 IT 취업 후 겪는 현실적인 장단점

출처: HubSpot
장점: 워라밸, 고용 안정, 낮은 진입장벽, 쉬운 비자
- 워라밸: SIer도 한국 SI보다 낫다. 토요일 출근이 없고, 6시 퇴근이 기본이다
- 고용 안정: 정사원이 되면 정말로 자르지 않는다. 성과가 나지 않아도 천천히 키워준다
- 비자: 기술·인문지식·국제업무 비자를 받기 쉽다. 연봉 300만엔만 넘어도 나온다
- 진입장벽: JLPT N2 + Java 기초만 있으면 SIer는 들어간다. 한국 카카오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 생활비: 도쿄 23구 밖이면 한국보다 살짝 싸다. 외식은 한국이 더 싸다
- 문화적 친숙함: 한국과 시차가 없고 비행기로 2시간이다. 가족을 만나기 편하다
단점: 성장 정체, 느린 연봉 상승, 구식 기술 스택, 외국인 차별
- 성장 정체: SIer 3년을 하면 실제 개발 스킬은 한국 1년 차 수준이다. 엑셀 장인은 된다
- 연봉 상승: 일본은 연공서열이 아직 남아 있어서 1년에 1~3% 오른다. 한국처럼 이직해서 20% 점프하기는 쉽지 않다
- 기술 스택 구식: Java 8, Spring 4, Oracle 11g 같은 것을 아직 쓴다. 모던 프론트엔드 경험을 쌓기 어렵다
- 외국인 차별: 대놓고는 하지 않지만, 관리자 트랙에 외국인을 올리기를 꺼리는 회사가 많다
- 언어: 생활은 N3로 되지만 직장에서 경위서, 보고서를 쓰려면 N1 수준이 필요하다
일본어는 얼마나 필요한가
이것이 제일 자주 묻는 질문인데, 현실적으로 SIer는 N2 최소, N1 권장이다. 웹계는 메르카리처럼 영어가 되는 곳은 N5도 가능하지만, 사이버에이전트, 라쿠텐은 N2 이상이 거의 필수이다.
일본어 JLPT 급수별로 가능한 회사를 대충 정리하면:
- N5~N4: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메르카리, 일부 외국계 지사 정도
- N3: 외국인을 많이 뽑는 SIer 일부 (휴먼리소시아, 파소나 등)
- N2: 대부분의 SIer 서류 통과 가능, 웹계 진입 가능
- N1: SIer 정규직 트랙, 관리자 경로, 프로젝트 리더 가능
그래서 일본 IT 취업을 추천하는가: 솔직한 결론
주니어 탈출용으로는 괜찮다
한국에서 SI를 돌고 있는데 답이 없어 보인다면 일본 SIer에 가서 경력을 리셋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 워라밸이 좋아지고 고용이 안정되면 적어도 삶의 질은 올라간다. 한국 SI와 비교하면 야근이 적고, 갑질이 적고, 해고가 거의 없다.
3~5년 후 진로 설계가 핵심이다
다만 SIer에서 평생 있으면 안 된다. 엑셀 장인이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도 갈 곳이 없고, 일본 내에서도 웹계 이직이 어려워진다. SIer를 2~3년 다니면서 야간/주말에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GitHub를 꾸미고, 영어 공부를 해서 웹계로 점프하는 것이 정석 코스이다.
웹계로 가면 정말 괜찮다, SIer는 한국 SI와 비슷하다
메르카리, 라인, 야후재팬, 사이버에이전트 같은 웹계로 갈 실력이라면 일본 IT를 정말 추천한다. 연봉도 괜찮고 기술 스택도 좋고 워라밸도 최상급이다. 다만 거기에 들어갈 실력이라면 사실 한국 네카라쿠배도 갈 수 있다. 선택의 문제이다.
핵심 요약:
- 일본 IT 테스트 문화는 다중 하청 + SIer 비즈니스 모델 + 제조업 품질관리 유산의 합작품이다
- 일본 IT = SIer(낡음) + 웹계(괜찮음)로 이원화되어 있다. 뭉뚱그려서 판단하면 안 된다
- 주니어라면 SIer도 괜찮지만 3년 안에 탈출 계획이 필수이다
- 웹계 진입 장벽은 한국 대기업 수준이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 일본어는 SIer N2 필수, 웹계는 영어로 OK인 곳도 있다
일본 IT 취업은 누가, 어디에, 언제, 왜 가느냐에 따라 대박일 수도 폭망일 수도 있다. 단순히 "일본이 좋다더라"로 가면 엑셀 800줄을 쓰는 자기 자신을 3년 후에 발견한다. 일본 IT 테스트 문화가 만들어낸 업계 구조를 이해하고 가야 그 안에서 살아남든 탈출하든 전략이 나온다. 적어도 이 글을 읽고 가면 무엇을 각오하고 가는지는 알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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